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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말죽거리 잔혹사 리뷰★[★ Movie]/Review 2020. 9. 2. 18:10
잔혹했던 추억에 바치는 연가, 말죽거리 잔혹사
'추역' 은 아련함을 무기로 하는 과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다. 많은 사람들은 흐릿한 그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면 그다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존재했던 세월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뒤안으로 사라져간 그 기억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끼워나가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에서는 공유할 수 없는 당시의 풋풋한 사건들은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추억이라는 것이 늘 기억 속에 두고 싶은 것만은 아니다. 잊어버리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우리는 악몽이라 명명한다. 허나 그것이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일들에서 현재의 의미, 또 미래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역사'를 학습하는 것처럼, 과거의 악몽을 오늘에 되살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인생의 일 할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만큼 학창 시절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하며 영향력이 강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어떻게 보면 그것은 가장 훌륭했고, 가장 또렷한 '추억'일 것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는 우리의 학창 시절을 이야깃거리로 한 학원액션물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영화도 아니고, 흥미 위주로 흘러가는 의미없는 영화도 아니다. 동시기 유행했던 <친구> , <품행제로> 와는 사뭇 차원이 다른 영화로 여겨진다. 이들 영화와는 달리 차별화된 부분이 무엇인지, 영화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말죽거리 잔혹사> 는 영화 초반부부터 70년대 후반의 부동산 투기를 영화 전면에 드러내 현재까지 만연한 악습을 꼬집고 넘어가려 한다. 시대 비판을 의도로 기획된 영화로서 발칙한 도입부를 제시한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장면들도 과거의 고증에 대한 연출가의 고민과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뒷문에 승무원을 싣고 털털대며 달리는 버스나 집집마다 문 앞에 놓여진 다 쓴 연탄 등 대략적인 소품은 물론이며 유신헌법 개정 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상징적인 문구가 학교 교문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작가의 의도를 심화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요즘 일부 영화들에서 일관되지 못한, 혹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을 아무렇게나 나열한 짜깁기 방식으로 일관한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말죽거리 잔혹사> 는 시퀀스 내부의 연관 관계는 물론 시퀀스와의 관계에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시나리오를 자랑하고 있다. 시종일관 부정적 내러티브를 발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떨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단 한 번의 장면에서도 그 메시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슬프고 잔혹했던 추억을 주로 논하고 있지만 추억이라는 화제에서 '사랑' 은 결코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극중에서는 과감하게 희생되어 그저 부가적인 요소로 논해지고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폭력씬이나 교문 앞의 권위적 학생으로 통하던 선도부원들이 동급생에게 권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은 영화가 주는 의미를 향해 관객들도 함께 다가가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다.
마지막의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 라는 대사는, 학창 시절에 '길'을 찾지 못했던 나에게는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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